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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

감독/추창민 출연/조정석, 이선균, 유재명 이선균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그가 세상을 등졌을때의 안타까움은 유작 개봉날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다. 1972년 박정희 암살사건인 10. 26 사태의 실화를 담은 영화다. 이선균은 군인 신분의 박태주 대령으로, 암살 사건을 일으킨 부장의 수행비서관이었다. 박대령의 변호인으로 조정석은 그가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고군분투한다. 당연한 듯이 군부의 의도대로 재판이 끝이 나고 모두 사형을 당한다. 그 당시의 역사에, 재판의 부당함에 함께 분노하게 되는 영화지만 다른 거보다는 이선균의 굳은 표정이 아직도 아련하다. 영화에서의 배역이지만 그의 비장함, 꺾지 않는 고집, 희미만 웃음...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배우 이선균을 추모하며, 그가 ..

영화 말하기 2024.08.22

여름

높은 산이 아니라 나즈막한 동네산을 짬짬이 오르고 있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다. 들꽃의 인사도 받는다.   산 속의 이 친구들은 자기 순서를 기다릴 줄 안다. 절대 앞서지 않고 때가 되어야 모습을 드러낸다.  입추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바람의 손길이 달라졌다. 훅훅 내뿜던 한여름의 열기를 살짝 덜어냈다는 느낌이 온다.뜨거웠던 올 여름이 이렇게 뒷걸음 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뭇잎 끝자락의 색도 달라보인다. 조금더 지나면 단풍이 시작될 거라는 신호를 주는 듯하다.  은퇴까지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렸던 한 선배는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야위어 가는 몸을 달래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삶은 병과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남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 모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세상..

사노라면 2024.08.11

코로나와 5월

봄옷을 입어보지 못했다. 개강 준비로 블라우스는 새로 사놨었는데 한번도 입지 못했다. 외출이 거의 없고, 학교에 나갈 때도 청바지 차림으로 갔다오기 때문에 딱히 옷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코로나 상황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사실 좀 우울해지기는 한다. 티비를 켜는 시간도 많아졌다. 걸레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찾는 시간도 많아졌다. 한동안 온라인 연락을 하던 지인들과도 점점 더 뜸하게 되었다. 별일 없이 문자 등을 하기가 머슥해져버렸다. 대신 새로운 음식을 찾아 만들어 먹는 일이 즐겁다. 나만의 레시피로 빵도 만든다. 내 방식대로 새 요리에 도전한다. 화초 정리도 했다. 말끔해진 다육이 화분에 아침마다 눈맞춘다. 4주 정도 남은 학기가 전부 다 온라인으로 진행될거라는 소..

목소리가 큰 여자

그녀가 편의점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경영을 시작한 셈이다. 초등학교, 여중 여고를 근처에 끼고 있어서 편의점에는 학생 손님들이 많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끼리끼리 수다를 떨며 주전부리를 하는 모습에 덩달아 아련한 추억 속에 돌아가기도 한다며 웃는다. 여느 편의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들릴 때마다 활기가 넘친다. 우선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컵라면 물을 받는 학생을 보면, "뜨거우니까 조심!" 하며 고함을 지른다. 편의점 아주머니가 이렇게 큰소리치는 건 처음봤다니까 멋쩍게 웃는다. 아이스크림을 뜯으면 "쓰레기통에 제대로!" 라며 지적을 한다. 그녀의 편의점에서는 손님들이 분리수거를 안하면 안된다. 목소리 큰 그녀가 뒤에서 체크를 하기때문이다. 여름에 테라스에서 캔맥주..

텃밭이 정말 싫다구?

점심을 먹고나서 전화를 했댄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을 한다. 그 친구는 나이 차이가 제법 많이 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네 살도 많다고 생각하는 내게 그 곱절이나 되는 사람과는 어떻겠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어린 색시라 아주 살갑게 대해줄거라 생각했댄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윗사람 행세를 자꾸 하더란다. 미더운 구석이 없는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잔소리꾼이라고 말한다. 작은 소도시가 집인 친구는 집 주변으로 텃밭이 있어 고추랑 호박, 상추 등 채소를 심곤했다. 한번씩 나에게까지 봉지봉지 싸 보내곤 하였다. 그런데 이삼 년 전부터 그 남편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제법 넓은 밭에다 많은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말은 온통 밭에 매달리고, 퇴근 후에도 꼭 밭에 나가야 할 정도..

필경사 바틀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선택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들이 우리들에게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필경사인 ‘바틀비’는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고용주인 변호사의 지시를 거부한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허먼 멜빌은 『모비 딕』(백경)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멜빌은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보냈지만 그가 열세 살 되던 해에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스무 살에 배를 타게 되었고 해군으로 복무하기도 해서 초기 작품 중에는 선원과 바다에 관한 소설들이 많다. 그러나 『모비 딕』을 비..

문학 수다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