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독/이창동 윤정희
한강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 중학생 외손자와 사는 예순여섯살의 양미자.
꽃을 좋아하고, 때로 엉뚱한 말을 하고,
꽃무늬 화려한 옷을 즐겨입고, 모자와 스카프로 멋을 내는 그녀가
문화원에서 하는 시 강좌를 듣게 된다.
생전 처음 시를 써보고자 하지만
시상을 잡지 못해서 안타깝기만 하다.
간병인 일을 하며, 딸하고는 전화로 친구처럼 사소한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손자가 같은 학교 다니는 여학생의 자살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한다. 느닷없은 그 고통에 좀처럼 편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손자를 윽박지르거나 원망하지도 않고
일상을 이어가며 잔잔하게 지켜보며 속죄의 기회를 주지만 손자는 모른척한다.
시낭송회에 참석하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메모를 하고..
그러나 그녀에게도 죽음은 다가오고 있었다.
종종 단어를 잊어버리는 그녀는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게 된다.
단 한편의 시를 쓰게 되는 미자.
마지막 시 수업에 국화꽃다발과 시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위로 그녀의 시가 낭송된다. 죽은 여학생이 그 시를 받아 읽는다.
여학생에 대한 죄스러움을 말하지는 못해도 눈빛으로, 몸으로 절절히 보여줬던 그녀도
그 여학생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 <아네스의 노래>는 미자 그녀의 시이자 죽은 여학생 아네스의 시였다.
이 영화는 크게 두 뼈대가 있었다..
하나는 어린 손자(중학생)가 보는 성과 중풍을 앓는 노인의 성.
또 하나는 시처럼 아름다운 세상과, 살벌하고 잔인한 현실하고의 대비.
그 두 축이 영화를 지탱해나가면서
윤정희의 느릿느릿한 연기가 바람소리, 물소리, 햇볕, 나뭇잎의 흔들림까지도 읽어내게 한다.
대사 보다는 표정으로 전달하고,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탐색하게 만드는 고도의 기술.
나도 시 한편 써보고 싶어졌다.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읽은 것은 즐기는 터라..^^
평생을 두고 멋진 시 한편 남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