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를 마치고 지하 마트로 내려갔다.
제사가 있어서 제수 준비에 마음이 바빴다.
- 어, 어!
대학 동기가 앞을 막는다.
- 야! 오랫만이다. 왠일이야?
- 나? 위에서 수업 끝나고 장 보러. 제사.
- 아직도 그래 바쁘냐? 대.단.해요.
그 친구는 유치원생 아들을 인사시킨다.
돌잔치때 봤지만 또 몇 년 훌쩍 지나버린 탓에 못알아보겠다.
아빠와 다른 걸 보니 엄마 쪽을 닮은 것 같다.
그 친구 나랑 통학 멤버다.
같은 동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는데 종점에서 종점이었다.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시간동안 둘이서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선 눈이 왕방울만하고 마음이 너무 여리고 남의 눈치도 많이 보았다.
하교길에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좀 사서 버스를 타자고 하면 기겁을 했었다.
군대 간다고 환송회 겸 집으로 식사초대를 받았을때..
그때까진 나는 그렇게 넓은 아파트를 본 적이 없었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허름한 운동화에 청바지...겉으로 보기에는 몰랐는데 꽤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때는 좀 황당했지만 뒤에 생각하니 그 친구가 참 고마웠다.
있는 내색않고 둥실하게 지내는 그 마음 씀씀이가 듬직해보였다.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래도 여전히 그 친구는 나의 대학 시절을 기억해준다.
아직도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로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