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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산향] 똑같아!

박산향 2009. 4. 12. 17:12
 

 똑같아!                               

                                           박 산 향


  오빠가 저녁밥을 차려주었습니다. 된장찌개에 하얗고 도톰한 두부를 넣고 빠글빠글 끓여서 식탁 가운데에 놓았습니다. 

  “자, 밥 먹자.”

  오빠는 웃으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까부터 식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얼른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잘 먹을게. 와, 맛있겠다.”

  “많이 먹어, 우리 지영이.”

  “응.”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서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에 넣었습니다. 역시 오빠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최고입니다.

  오빠는 조리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래층 아줌마는 오빠가 조리고등학교 다니는 게 신기한지 내게 물었습니다.

  “니 오빠 진짜 조리고등학교 다녀?”

  “예.”

  “그런 학교도 있었나? 요리는 잘 하니?”

  “예.”

  “엄마가 잘 하셔, 오빠가 잘해?”

  “오빠요.”

  아래층 아줌마는 호호호 웃으셨지요. 엄마도 요리를 잘 하시지만 나는 오빠랑 함께 밥을 먹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오빠가 해주는 밥이 더 맛있답니다. 오늘도 엄마는 내가 잠이 들고 나서야 돌아오실 겁니다. 먼저 자라는 전화를 받았거든요.

  “오빠! 요리사는 뭐든지 만들 수 있지?”

  나는 밥을 먹다 갑자기 생각나서 오빠한테 물었습니다.

  “뭐가 먹고 싶어서 이러실까?"

  오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게 아니고, 오른손에 힘이 생기는 요리 같은 건 없어?”

  “지영아…….”

  오빠는 한동안 가만히 식탁 끄트머리만 보고 있었습니다.

  “오른손 때문에 누가 놀렸어?”

  “아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미술 선생님은 자꾸 나를 도와주려고 하잖아.”

  “도와주는 거 싫어?”

  “나도 할 수 있단 말이야. 좀 느리지만 혼자 할 수 있는데.”

  나는 2학년이 되고 나서 미술학원을 다닙니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내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왼손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왼손인데도 잘 하네.”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이라서 그래요.”

  내 말에 친구들과 선생님의 표정이 잠깐 굳어버렸습니다.

  “왜 장애야? 아무렇지도 않는데?”

  선생님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저 장애 맞아요. 오른손하고 오른쪽 다리가 잘 안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뛰는 것도 잘 못해요.”

  선생님 얼굴이 발그레 졌습니다.

  “아유,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데 말야, 지영아.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 중에 왼손잡이가 얼마나 많은 줄 아니? 피카소도 왼손잡이였고, 미국대통령이었던 클린턴도 왼손잡이래.”

  “진짜요?”

  이번에는 친구들이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그럼, 진짜지. 빌게이츠도 왼손잡이라잖니.”

  선생님은 내게 열심히 설명하고 다정스럽게 대하셨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왼손으로도 잘 할 수 있어요.”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선생님은 자꾸만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부터 선생님은 지나치게 친절하십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올 때도 꼭 손을 잡고 1층 계단까지 내려오십니다. 조금 느리지만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크레파스로 색칠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없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색칠을 하면 선생님께서 또 도와주십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오빠가 밥 많이 먹으면 힘도 세진다고 했잖아.”

  “그래.”

  “그럼, 밥 많이 먹으면 오른손에도 힘이 세져?”

  오빠의 눈이 슬퍼졌다는 거 나도 압니다. 그래도 나는 오른손에 힘이 세져서 그림도 오른손으로 그리고, 글도 오른손으로 쓰고 싶어서 오빠한테 떼를 썼습니다.

  “오빠는 요리사잖아. 맛있는 것도 잘 만드니까 오른손에 힘이 세지는 요리도 만들 수 있잖아.”

  오빠는 대답을 안했습니다.

  “지영아. 오빠가 보기엔 지영이는 그냥 왼손잡이야. 니가 못하는 게 있기라도 해?”

  “달리기는 만날 꼴찌야.”

  “오빠도 달리기 못해.”

  “그래도 오빠는 오른손에 힘이 세잖아.”

  “그게 부러워?”

  “응.”

  “그럼, 오늘부터 글도 오른손으로 쓰고 밥도 오른손으로 먹고 자꾸 연습해.”

  “그래도 안 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자꾸 연습하면 되지.”

  “그럼 꼴찌만 한단 말이야. 급식도 꼴찌, 알림장 쓰는 것도 꼴찌.”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빨리 끝낸 일을 나 혼자 늦게까지 하고 있다가 정말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면 친구들이 한 바닥 다 쓸 때 나는 한 줄도 겨우겨우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뿐만 아니라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버립니다. 

  “나는 일등으로 하고 싶어.”

  “너는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단 말이야.”

  오빠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화가 났나 봅니다.

  맛있는 냄새가 났던 된장찌개가 다 식어서 멀겋게 보였습니다. 나도 숟가락을 놓고 텔레비전 앞으로 갔습니다. 텔레비전 속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잔디밭을 달리고 있습니다.

  ‘흥, 오빠는 바보야.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일부러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하고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빨리 오시면 안돼요?”

  “회사가 바빠서 그래. 오빠가 밥 안주던?”

  엄마는 밥 먹는 것만 중요한 가 봅니다.

  “아빠도 오늘 늦는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미안해. 우리 딸 미안하다. 나중에 보자.”

  ‘칫,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야.’

  오빠는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오늘은 아무 말도 없이 설거지만 합니다.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는데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합니다. 오빠가 내 옆에 와 앉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지영아, 오빠가 할게!”

  큰 목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뭘 오빠가 해?”

  “지영이 오른손 힘이 세지는 요리 말이야. 오빠가 꼭 만들어 낼 거라고. 오빠가 얼마나 요리 잘 하는지 알지?”

  나는 오빠 어깨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분명 우리 오빠는 해낼 것입니다. 조리고등학교에 다니는 멋진 오빠니까요.

 

             <어린이글수레 2007년 여름호> 

출처 : 어린이글수레
글쓴이 : 남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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