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수다

필경사 바틀비

박산향 2020. 4. 2. 13:54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선택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들이 우리들에게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필경사인 바틀비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고용주인 변호사의 지시를 거부한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허먼 멜빌은 모비 딕(백경)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멜빌은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보냈지만 그가 열세 살 되던 해에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스무 살에 배를 타게 되었고 해군으로 복무하기도 해서 초기 작품 중에는 선원과 바다에 관한 소설들이 많다. 그러나 모비 딕을 비롯한 멜빌의 대다수 작품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재평가되었으며, 현재는 미국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멜빌의 작품 필경사 바틀비는 괴짜 필경사 바틀비에 관한 이야기다. 필경사는 복사기가 없던 시절 문서를 베껴 쓰던 사람을 말한다. 바틀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인물이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진다.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작품의 화자는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로, 월가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을 설명하며 다소 이상한 직원들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미 세 명의 필경사가 있었지만 일이 늘어나면서 한 명을 더 고용했는데 그가 바틀비였다. 처음 바틀비는 어마어마한 양을 정확하게 필사해낸다. 오랫동안 일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서류를 먹어치우듯 쉬지도 않고, 말없이, 창백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필사를 했다. 바틀비가 일한지 사흘째 되던 날 필사한 문서를 검토할 것을 지시하자 바틀비는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라며 아주 상냥하며 정확한 어조로 태연하게 대답한다. 당연히 변호사는 당황하였고 한번 그러고 말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시에 대한 거부는 계속된다. 오히려 그의 말투는 변호사와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 말투를 무심결에 따라하게 되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그러나 고용주인 화자가 생각하기에 바틀비의 고집과 업무 지시에 대한 거부는 도를 넘어서고 있어 일을 그만 둘 것을 요구하나 그것마저도 거부당한다. 더욱이 사무실에서 거주까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기까지 한다. 그러다 사무실을 옮기게 되면서 골치 아픈 바틀비를 남겨두고 이사를 하기에 이른다. 이후 바틀비는 건물주에게 쫓겨나 교도소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규칙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전면으로 거부했던 바틀비는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에서 강요를 거부하는 바틀비는 분명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틀비가 변호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틀비는 그 이유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삭막하고 고독한 도시, 월가의 중심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중요하겠지만 삶의 장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에 도시의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바틀비가 기본 생활을 누릴 거주지가 있었다면 그렇게 단호한 행동을 이어갔을까? 먹고 잘 공간도 없이 사무실 한쪽에서 생활했던 바틀비에게 희망이나 미래가 있었을까?

또 하나는 지식인, 사회지도층의 이중성에 대한 생각이다. 화자인 변호사가 바틀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어쩐지 최대한 자비로운 상사로 기억되고 싶은 변명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정말 바틀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 자신의 명예나 체면 보다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텐데 말이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거 같은데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서 때로는 우울해지고 주눅 들곤 한다. 편히 먹고 잘 공간은 필수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선택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곳이 아닐까. 바틀비가 살고 싶었던 바로 그 곳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