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향 2010. 11. 16. 18:47

                    수탉처럼                

                                           부산아동문학인협회 2010년 연간집

 

 

작년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하셨다. 아파트에 사는 건 답답하시다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시골로 가셨다. 텃밭을 일구며 동물들을 키우면서 살고 싶어 하시던 할아버지, 들꽃을 좋아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이사를 가신 후 목소리에 쩌렁쩌렁 힘이 들어갔다.

“지민아! 할머니 집에 언제 올 거냐? 모란이 엄청 예쁘게 피었다.”

할머니 댁의 소식은 가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다. 매일이다시피 전화를 하시는 할머니, 가끔씩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시기도 한다. 친구 솔희 말에 의하면 우리 할머니는 인터넷도 하시는 신세대 할머니다.

할머니 댁에는 동물들이 많다. 마당에 들어서면 강아지 흰둥이가 있고, 흰둥이랑 언제나 같이 다니는 새끼 염소도 있다. 닭장에는 암탉이 아홉 마리에다 수탉이 두 마리 있고, 할아버지의 자랑 꽃사슴도 일곱 마리나 된다.

어느 날 이웃집 큰 개가 풀려서 할머니네 닭장을 덮쳤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잘 생긴 놈 있지 왜! 그 수탉이 암탉들을 지키려고 나섰는데 에구! 그만 맥도 못 추고 말았구나.”

“할머니, 우리 수탉 불쌍해서 어떡해요!”

그날 저녁 할머니는 전화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통화를 하면서 나도 속이 상하고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나쁜 개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두셨어요?”

“에그, 이웃끼리 뭐 어쩌겠냐. 다음부터 조심하겠지. 그나저나 수탉이 적어 무정란을 낳을까봐 걱정이다.”

할머니는 암탉의 숫자에 비해 수탉이 적으면 무정란을 낳을 확률이 많다고 걱정 하셨다.

그 주말에 할머니 댁에 갔다.

“마침 저 아랫집에서 수탉 한 마리를 데려가라고 하는구나.”

“할머니 그럼 잘됐네요. 수탉이 모자라서 걱정했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지민아, 우리 같이 가서 수탉 데려올까?”

“예, 할머니!”

그 수탉은 불그스름한 벼슬이 풍성해서 척 보기에도 멋있어 보였고, 깃털은 선명한 붉은 빛과 검정, 그리고 노르스름한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박또박 걷는 폼은 어딘지 위엄이 있어 보였다.

“태양이라 불러도 돼요? 꼭 태양처럼 멋있는데요, 할머니!”

“그러자꾸나. 그런데 원래 있는 놈은 이름도 없냐?”

“음, 원래 있던 수탉도 이름을 불러 주는 게 좋겠지요? 뭐라고 할까요?”

“이 놈 태양이도 니가 지었으니 원래 있던 수탉도 우리 지민이가 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꼬식이라 할까 꼬돌이라 할까요?”

“푸하하! 그건 지민이가 알아서 정하세요.”

할머니는 재미있는지 소리 내어 웃으셨다. 나는 원래 있던 수탉을 두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암탉들은 모두 꼬꼬라고 부르고 있어서 마땅한 이름을 생각하던 중 원래 집에 있었던 수탉이라 그냥 두목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 데려온 태양이는 처음부터 미움을 받았다. 닭장 안으로 태양이를 밀어 넣었는데 두목이 계속 경계를 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다른 암탉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이는 다른 닭들 곁에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첫날부터 태양이는 외톨이가 되었다.

두목이 태양이를 쪼아서 피를 내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내내 두목이가 안타까워서 두목을 혼내기도 하고, 암탉들에게 타이르기도 해봤지만 늘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태양이가 한번쯤 반항할 만도 한데 태양이는 전혀 덤비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지민아. 저기 저 암탉 말이다. 신기하게도 저 녀석이 요즘 태양이 편을 드는구나.”

“예? 그럼 태양이도 친구가 생긴 거네요.”

“친구인지 애인인지 암튼 같은 편이 생겨서 다행이다.”

태양이는 공격을 당해서 깃털이 보기 싫게 뽑히고,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해 삐쩍 말라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암탉 한 마리가 태양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두목의 괴롭힘을 막아내고 있는 그 암탉 한 마리 덕분에 태양이는 그나마 구석자리라도 차지하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정말!”

“그러게. 둘이 꼭 부부처럼 다정하구나.”

태양이와 암탉은 꼭 붙어서 다녔다. 행여 두목이나 다른 암탉이 공격할까봐 눈치를 보면서도 둘은 다정하기만 했다.

“짐승도 사람과 비슷한가부다. 니 할아버지와 내가 처음 이 동네로 들어왔을 때도 동네 사람들 눈이 곱지 않았거든. 돈 많은 늙은이들이 시골마을 분위기 망친다고 그랬지. 우리를 모르고 한 말들이었지만 처음엔 속이 많이 상했었다. 토박이들이 외지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좀 심하더구나.”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몰랐어요.”

“너희들도 전학 온 친구들 왕따시키곤 하잖니. 지난번에 전학 온 애 이름이 뭐랬지? 그 애 아직 친구도 없다면서?”

“경진이요? 그렇긴 해요. 그럼 태양이도 왕따 당한 거네요.”

“비슷하지?”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친구가 된 암탉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태양이를 줬던 아랫집에서 다시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한 번 줬으면 그만이지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했지만 그 집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태양이를 돌려주려고 할머니가 그 집으로 가서 닭장으로 태양이를 넣으려고 했다.

눈 깜빡 할 사이였다. 태양이가 푸드득 날아올라 달아났다. 쫓을 틈도 없이 뒷산 쪽으로 달아나버리는 태양이를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 다음 날도 태양이를 찾아 나섰지만 아무 곳에도 흔적이 없었다.

“산에서 굶어죽거나 다른 짐승들 먹이가 되지나 않았는지, 찾을 수가 없구나.”

할머니는 태양이가 도망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속상해하셨다. 나는 태양이의 움츠린 모습이 눈에 선해서 괜히 두목한테 화가 났다. 같이 있는 동안에도 왕따를 시키더니 이제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된 것이 꼭 두목 탓인 것만 같았다.

태양이와 함께 하던 암탉도 기운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젠 그 암탉 혼자서 닭장을 빙빙 돌았다.

며칠이 지났다.

할머니가 아침 일찍 전화를 하셨다.

“지민아. 이런 일도 있구나. 글쎄 태양이가 돌아왔다.”

“예? 어떻게요? 어디서 찾으셨어요?”

“기특하기도 하지!”

할머니가 찾은 게 아니었다. 태양이는 자기 발로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침에 흰둥이가 시끄럽게 짖어대길래 쥐라도 왔다갔다 하나보다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온 몸에 털이 다 빠진 요상한 몰골의 동물이 할머니댁 닭장으로 오고 있더랜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태양이를 못 알아 볼 정도였다니 흰둥이도 그리 짖은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가까이에서 태양이를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닭장 문을 열어주었다. 태양이가 닭장 안을 빙글빙글 한바퀴 돌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암탉이 태양이 곁으로 가더니 같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목과 다른 암탉들도 태양이와 암탉을 따라 닭장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이가 우리 집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것에 감동했는지, 암탉을 못 잊어 찾아온 것에 감동했는지 아무튼 다른 닭들이 태양이를 받아들인 모양이다. 아주 사이좋다, 지금!”

할머니는 껄껄 웃으시며 주말에 꼭 들리라고 하셨다.

“지민아! 이젠 태양이가 완전히 우리 식구 된 것 같지 않니? 사람하고 똑같다. 똑같아!”

할머니 목소리가 또롱또롱 울려오는데 내 눈 앞에는 경진이의 풀죽은 얼굴이 가만히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