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마지막 인사 박산향 (2009 경호문학 2호)
결국 통증이 시작되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고 하지만 남편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많이 아프면 병원 가요.”
“아니야. 견딜만해.”
내가 대신할 수 없는 아픔을 보고 있자니 가슴만 탄다.
암이 발병되고 1년여 지나는 동안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그래도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는 애써 내색을 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 은진이와 은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남매를 생각하니 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남편은 어떤 심정일까?
은진이는 예쁘고 똑똑한 아이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또래 아이들보다 더 생각이 깊은 편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도 깊고 따뜻한 아이, 우리 딸 5학년 은진이.
은호는 1학년이다. 개구쟁이에다 활동적인 아이라 늘 무릎이 깨져 다니지만 밝고 귀엽다. 공부보다는 축구나 야구에 관심이 많고, 책을 보는 시간 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모르고 있다. 몇 달 전부터는 아예 회사도 그만두고 병원을 오간다는 것만 안다. 수술을 하고 나서 점점 좋아지는 줄 아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건 차마 말할 수가 없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리라.
부쩍 핼쑥해진 아빠를 보며 아침밥을 먹던 은진이가 말했다.
“아빠, 밥맛이 없어요? 살이 더 빠진 것 같애.”
“어, 그러니?”
어정쩡하게 얼버무리는 남편.
“엄마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그러세요. 뭐 드시고 싶어요?”
은진이는 내 쪽을 보았다. 비싯 웃어주었지만 은진이도 알고 있었다. 아빠가 아무거나 잘 먹지 못하고 소화도 잘 안 된다는 걸. 그러면서도 늘 아빠 먼저 챙기는 우리 딸 은진이.
“엄마! 저요, 야채죽이 먹고 싶은데 오늘 저녁에 해주시면 안돼요? 당근이랑 감자랑 넣어서 색깔 예쁘게요.”
은진이가 야채죽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만들어 달라는 건 아빠랑 같이 먹겠다는 말이다. 아니 아빠에게 뭔가 드시게 하고 싶은 것이다. 아,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지나간다. 어쩌면 좋을까 우리 아이들.
“누나는 야채죽 좋아? 나는 죽은 싫은데.”
아무 생각도 없는 듯이 맛있게 밥을 먹던 은호가 툭 내뱉은 말이다.
“나 좋아해.”
너스레를 떠는 은진이.
“그래, 여보. 오늘 저녁에는 야채죽으로 먹읍시다.”
남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투병을 하면서 집에 있게 된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꼭 마중을 나갔다. 마중이래야 아파트 광장에서 기다리는 거지만 아이들을 손수 맞이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내버려두었다. 혹 기운이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뜻밖에도 아이들과 남편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은호를 기다리는 한낮, 따뜻하게 어깨에 내려앉는 햇볕에 남편은 눈을 감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두렵지는 않을까. 사실 나는 두렵다.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두렵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하는 것도 두렵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우리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감싸줄까도 두려운 일이다. 요즘도 애늙은이 같이 나를 위로하는 은진이가 또 얼마나 속앓이를 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빠! 엄마!”
은호는 한쪽 가방 끈이 어깨에서 내려와 있는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늘 점심에 짜장밥 먹었어요.”
헉헉거리며 가방을 벗어 주는 은호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안 봐도 알겠다, 짜장밥. 우리 은호 볼때기랑 옷에 온통 짜장이네 뭐.”
남편도 킥킥 웃었다.
“맛있었어?”
“예. 두 번이나 갖다 먹었어요.”
“잘했다. 많이 먹어야 쑥쑥 크지.”
남편은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호야. 반찬 투정 안하고 엄마 해주시는 것도 뭐든지 잘 먹어야 한다. 앞으로도 주욱.”
“걱정마세요, 아빠. 제가 얼마나 잘 먹는데요.”
남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은호야. 우리 자전거 탈까?”
“좋지요.”
내가 눈치를 주었지만 남편은 벌써 자전거 보관대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은호는 아빠랑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한다.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가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친구들하고 타는 것 보다 몇 배 신난다고 한다.
은호를 태운 남편의 자전거가 앞을 지나갔다. 나는 화단 난간에 앉아서 두 사람의 자전거가 모퉁이를 돌아가는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담에 은호가 자라면 아빠하고 자전거 탔던 걸 기억할까. 아빠하고의 시간을 생각하며 행복해할까.
자전거를 탄 날 저녁에 남편은 조금 더 힘들어했다.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되는데 아이들만 보면 잊어버리게 된다고 웃어넘긴다.
은진이가 학교에서 기말 고사를 치른다. 시험이 끝나면 곧 여름방학이라 아이들은 조금 들떠 있다. 지난 시험에서도 은진이는 성적이 좋았다. 특별히 공부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뒤처지지 않는 것이 참 대견스럽다.
문제집을 사서 혼자서 풀어보고 친구들에게 학원 문제지를 빌려도 본다. 시험 준비를 하는 은진이에게 남편은 자꾸 신경이 쓰이나 보다.
“잘 돼 가?”
“녜.”
궁금한지 금방 또 가본다.
“어려운 거 없어? 아빠가 도와줄까?”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 볼게요.”
요즘 더 눈이 휑하니 들어가 있는 남편은 이제 식사도 제대로 못한다.
“은진이는 지가 알아서 잘 해요.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좀 편하게 누워있지 그래요.”
나는 남편이 걱정이다. 며칠 전부터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몇 군데 편지도 쓰는 남편을 보며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남편. 아파서일까. 아니 남은 우리 식구들에 대한 걱정 때문일 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은진이와 은호를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는 남편이니 말이다.
통증이 오는지 남편은 눈을 꼭 감았다. 후 후 길게 호흡을 하면서 참는 남편을 보는 것이 괴로워 슬그머니 피해버렸다. 은진이는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뭣 좀 줄까. 과일이라도?”
“아니요. 안 먹고 싶어요.”
괜히 은진이한테 말을 건네 본다.
“아빠는 더 아픈 거예요?”
“좀 그래. 너무 걱정 말고.”
나에게 주문이라도 걸듯이 ‘걱정 말고’에 힘을 주었다.
우리 가족에게 들이닥친 고난은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소리쳤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은진이가 시험을 치는 날.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꼼짝도 못했다. 남편은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나도 그런 남편 곁을 한시도 떠날 수 없었다. 간간히 정신을 차리면 누군가를 찾는 눈빛. 말을 제대로 못하지만 남편이 찾는 사람이 나와 아이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이들 고모가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시험을 끝내고 전화를 한 은진이에게 은호를 부탁했다. 병원에 오겠다는 아이에게 하루만 지켜보자고 한 것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이유도 있었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남편. 주사바늘에, 튜브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빠를 보고 아이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걱정도 되었다.
며칠 지나면서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마음의 준비를 했던가. 그래도 새삼스럽게 가슴이 미어온다. 가족들을 불러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고 하지만 계속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핏기 하나 없는 남편이 내 손을 잡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알아. 그러니까 말하려고 애쓰지 마요. 내가 잘 할게.”
남편이 힘겹게 눈을 껌벅거렸다. 남편처럼 내 눈도 촉촉해진다.
“우리 은진이랑 은호 보고 싶지? 오라고 할게요.”
웃고 있는 것이리라.
큰댁 식구들, 은호 고모네와 이모들. 한 사람 두 사람 다니러 오지만 모두 침울한 얼굴이다. 내게 무슨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며 인사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럽다.
“알고 있었는데요, 뭘.”
그렇게 얼버무리지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엄마! 아빠는요?”
“으응.”
아이들 얼굴을 보자마자 울컥 설움이 솟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약한 모습 보이면 우리 아이들이 더 힘들어진다.
은진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듯이 실룩거리는 입술.
“은호야. 자, 아빠 손 잡아드려야지.”
아이들이 들어서자 남편은 생기가 돌아보였다. 이내 슬퍼지는 눈빛.
“은진이가 이번 시험에서 일등 했대요. 올 백으로.”
은진이는 아빠의 손을 꼭 잡으며 기어코 울먹였다.
“아빠!”
은호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훌쩍거렸다.
말조차 잘 할 수 없는 남편은 펜을 달라고 눈짓을 했다. 수첩에다 힘겹게 글자를 써 넣었다.
“장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은호가 품에 쏙 안긴다. 은진이는 점점 싸늘해져가는 아빠 품에 엎드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안녕. 편히 쉬어요. 우리 잘 할게.’
나도 남편의 손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남편에게서 우리를 떼어놓을 때까지…….